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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을 보면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이라고 추측은 되지만
벌써 15년 정도가 지났을까?
시간은 생각하는 것 보다 빠르고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3년일까 아마도 그정도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아니 그렇게 머리 속에 정해 두었기 때문에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유년시간의 아주 긴 기간 이라고 여겨진다.
1년 2년 짧다고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긴 시간이다.
특히 나이가 어리면 어릴 수록 그 차이는 확실해진다.
말도 안되는 사상을 위해 자신을 속여가며 2년동안 시간을 허비 하기도
친구였다.
맞벌이 가계에 형제 없던 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교감 상대 였다.
때로는 장난감으로도 때로는 애정의 방출구로 언제나 곁에 있어 주었다.
그 아이 그 당시로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정신연령도 높았겠지만
나보다는 한참 작았기 때문에 아이라고 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처음부터..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심장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머리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가장 마지막 모습이기에 처음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제나 조금 빨리 걷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면 픽 쓰러져서 숨을 거칠게 헐떡이던,
몸이 약하면 성격도 상냥해지는지 나의 장난을 모두 받아주던
하지만 그런 몸으로도 연예도 하고 아기들도 만들고 어렸던 나에게 여러가지 경험을 공부를 시켜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없던 사이에 누군가에게 미움 받고
집에서 아주 먼 공원에 봉투에 쌓여 버려졌다
봉투는 아주 질겨서 잘 찢겨지지 않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벗어 나와
집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돌아 왔다.
하지만 마지막 힘을 다 써버려서 심장이 버틸 수 없었는지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여느 때 같았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웃는 얼굴로 얼굴을 부비며 다가 왔겠지만
오는 길이 힘들었는지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래도 자기를 사랑해주던 사람 앞에서 였으니 그래도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며칠 후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언제 나와 같이 집에 돌아 왔다.
제길, 슬픔이 분노로 바뀐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 허무하고 눈물이 멈추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이라도 보았으면, 아기들이 나를 위로 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4형제의 아기들이
남아있는 사진이라곤 한장 밖에 없네요.
잘 나온 사진이건 못 나온 사진이건 담아 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요
사진을 보면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이라고 추측은 되지만
벌써 15년 정도가 지났을까?
시간은 생각하는 것 보다 빠르고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3년일까 아마도 그정도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아니 그렇게 머리 속에 정해 두었기 때문에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유년시간의 아주 긴 기간 이라고 여겨진다.
1년 2년 짧다고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긴 시간이다.
특히 나이가 어리면 어릴 수록 그 차이는 확실해진다.
말도 안되는 사상을 위해 자신을 속여가며 2년동안 시간을 허비 하기도
친구였다.
맞벌이 가계에 형제 없던 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교감 상대 였다.
때로는 장난감으로도 때로는 애정의 방출구로 언제나 곁에 있어 주었다.
그 아이 그 당시로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정신연령도 높았겠지만
나보다는 한참 작았기 때문에 아이라고 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처음부터..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심장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머리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가장 마지막 모습이기에 처음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제나 조금 빨리 걷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면 픽 쓰러져서 숨을 거칠게 헐떡이던,
몸이 약하면 성격도 상냥해지는지 나의 장난을 모두 받아주던
하지만 그런 몸으로도 연예도 하고 아기들도 만들고 어렸던 나에게 여러가지 경험을 공부를 시켜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없던 사이에 누군가에게 미움 받고
집에서 아주 먼 공원에 봉투에 쌓여 버려졌다
봉투는 아주 질겨서 잘 찢겨지지 않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벗어 나와
집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돌아 왔다.
하지만 마지막 힘을 다 써버려서 심장이 버틸 수 없었는지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여느 때 같았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웃는 얼굴로 얼굴을 부비며 다가 왔겠지만
오는 길이 힘들었는지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래도 자기를 사랑해주던 사람 앞에서 였으니 그래도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며칠 후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언제 나와 같이 집에 돌아 왔다.
제길, 슬픔이 분노로 바뀐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 허무하고 눈물이 멈추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이라도 보았으면, 아기들이 나를 위로 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4형제의 아기들이
남아있는 사진이라곤 한장 밖에 없네요.
잘 나온 사진이건 못 나온 사진이건 담아 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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