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도쿄 모터쇼가 다시 개최 되었습니다.
올해는 환경, 대체연료를 생각한 컨셉트카와 스포츠카들의 부활이 눈에 띄는 전시회 였습니다.
옆의 아울랫인 가든 워크에서는 도쿄쇼 기념 바겐 세일을 하는 군요
오늘은 정면 출구가 아닌 호텔을 통해서 가보았습니다.
모델 분들은 이쪽 통로를 많이 이용하더 군요 ^-^
티켓은 1300엔 사전 예약을 하면 1100엔이 됩니다.
티켓 가격보다 교통비가.. 신주쿠에서 출발하면 왕복 1280엔입니다...
동경역에서 30분이상 걸리기 때문에..
마쿠하리를 조금 더 도쿄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입장하겠습니다~
레드 카펫을 깔아 두었네요 ^-^
밖으로 나가서 오토바이 전시장으로 이동 중입니다.
다음은 각 부스 별 전시 모습을 담아 보겠습니다.
HYUNDAI
차는 잘 몰라서 아무튼 노란색의 이쁜 자동차 입니다.
모델분들인데 조금 무섭게 나왔네요.. 헐..
ALFA ROMEO
1915년 원래 철도 기사였던 니콜라 로메오(Nicola Romeo)가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주에 있는 롬바르다 자동차 제작 주식회사(ALFA: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i)를 인수하였다. 회사 이름에 자신의 성(性)을 붙여 알파로메오라고 명명하였다.
1920년 이래 레이싱카를 주로 생산하였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들어서 승용차 제조회사로 전환하여 양산태세(量産態勢)를 갖추고 해외수출을 개시하였다. 주력 차종은 줄리아·줄리에타·알페타·알파수드 등이며, 표준 세단 외에 GT·스프린트 등의 종류를 갖추고 있다. 이 밖에 스포츠카인 스파이더를 생산한다.
고성능 차량을 많이 만들어내며, 라디에이터 그릴에 삼각형 방패를 본뜬 디자인은 알파로메오의 전통적인 특징이다.
BMW ALPINA
B7은 알피나에서 생산되고 있는 최고급 세단입니다. BMW 7시리즈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알피나의 숙련된 기술력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BMW 7시리즈를 만나보실수 있습니다.
# Model
21인치 알피나 휠을 장착하고 쐐기모양의 리어 스포일러를 장착하고 있는 알피나 B7은 훨씬더 다이나믹하고 우아화 모습을 보여줍니다.
# Engine
B7의 엔진은 Nautilus-type radial compressor을 장착한 4.4liter V8(500hp)입니다. 최상의 조합으로 강한 출력과 높은 연비를 자랑합니다. 또한 BMW 760li V12(445hp)에 비해 출력은 55마력이 높고 무게는 150Kg가볍습니다. 또한 무게 배분을 정확하게 50:50으로 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드라이브를 즐기실수 있습니다.
# Switch-Tronic
알피나 스티어링 휠은 손끝으로 자동 6단기어를 제어 하면서 보다 다이나믹한 드라이브를 경험하실수 있습니다.
# Wheel & Tyres
21인치 ALPINA CLASSIC 휠과 MICHELIN Pilont Sport II 타이어(앞 35시리즈, 뒤 30시리즈)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 INTERIOR
인테리어는 스포츠한 감각을 유지 합니다. ALPINA Blue와 전통적인 빨간 실로 마무리된 알피나만의 공간은 최상의 품질을 유지 합니다. 또한 온화한 느낌의 단풍나무 장식은 최상의 세단임을 나타냅니다.
# TECHNICAL DATA
# Performance
0-->100km/h 5.1s
Top speed 300km/h
# Engine
Cylinder V8 90
Capacity 4398 cc
1919년에 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가 세웠으며, 1930년대까지 영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였다. 벤틀리는 프랑스에서 차를 수입하여 판매하던 동생 호레이스 벤틀리(Horace Bentley)와 함께 벤틀리 자동차회사를 설립하였다. 처음 개발한 모델 3리터는 1924년과 1927년에 르망 24간 경주에서 우승하였다. 1925년에는 6.5리터, 1927년에는 4.5리터 등을 발표하였고, 역시 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1931년에 롤스로이스사(社)에 매각되었다.
이후에는 롤스로이스와 엔진을 공유하면서 스타일도 롤스로이스와 유사하게 변하였다. 벤틀리는 1955년에 S 시리즈, 1966년에 T 시리즈 등을 발표하였다. 1980년 이후에는 멀산느와 컨티넨털 등 롤스로이스와는 다른 독립적인 모델을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이를 ‘벤틀리의 부활’이라고 칭하였다. 1998년에는 폭스바겐이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를 인수하였다. 그해에 새로운 모델 아니지를 발표하였다. 벤틀리는 현재까지 롤스로이스급의 고급스러운 명차와 대형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자동차 메이커로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AUDI
1899년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1868~1951)가 설립한 호르히를 비롯하여, 데카베, 아우디, 반더러 4개사(社)가 대공황 후 미국 자동차의 유럽 진출에 대응하고자 1932년 하나로 모여 아우토우니온(Auto Union)이 되었다. 1958년 다임러벤츠 산하로 들어갔다가 1964년 폭스바겐에 인수되고, 1969년 NSU를 합병한 독일의 자동차 제조회사이다.
아우구스트 호르히는 '경주에 너무 몰입한다'는 이유로 1909년 호르히의 사장에서 축출되었다. 그가 따로 다시 세운 자동차 제조사가 바로 아우디이며, 자신의 성(姓) 'horch(들어라)!'의 라틴어 어원 'Audi'에서 이름을 따왔다. 합병회사의 명칭이 '아우디'로 바뀐 것은 1985년이다.
'기술을 통한 진보'를 표방하는 아우디는 자동차 역사에 상당한 족적을 새겨왔다. 1901년의 첫 번째 호르히자동차는 수평대향 엔진에 또 하나의 작은 피스톤이 크랭크축의 진동을 흡수하고 경합금제 크랭크케이스를 사용한 것이었다. 1921년에는 아우디가 좌측핸들을 선보였고, 데카베는 1931년 전륜구동 승용차를 내놓았다. 1980년에는 풀타임 사륜구동 승용차 아우디 콰트로(Quattro'를 발표하였다
이미 1910년대에 오스트리아 알핀레이스 연속제패로 'Alpensieger(알프스의 승자)'라는 별명을 얻고, 1937년에 레이싱카로 시속 400km를 일반고속도로에서 돌파하였던 아우디는 콰트로로 1980년대 모터스포츠의 각종 타이틀을 휩쓸었다. 아우디는 1938년에 충돌전복 테스트 시스템을 갖추는 등 안전에서도 선구적이어서 견고한 고품격 자동차로 명성을 쌓았다.
아우디의 라인업은 2004년 오토위크지에서 '미국의 최고급승용차'로 선정된 335마력의 V8 프리미엄세단 A8을 비롯하여, 세단 A6과 A4, 쿠페 TT, 그리고 SUV 올로드콰트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100% 투자법인인 아우디코리아를 통해 2004년 5월부터 공식판매되고 있다.
LAMBORGHINI
정식명칭은 Automobili Lamborghini S.p.A.이다. 1963년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트랙터 제조 사업의 성공을 기반으로 이탈리아에서 스포츠카를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당시 유명한 스포츠카 생산업체였던 페라리의 사장인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를 만나기 원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페루치오는 그가 자신을 무시한 데 자극을 받아 스포츠카 사업을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람보르기니는 1962년에 페라리의 엔진 디자이너를 영입하여 우수한 성능의 엔진을 개발하였다.
1966년, 람보르기니는 제네바 모터쇼에 미우라(Miura)를 발표하였다. 이 차는 6.2초 만에 100km/h에 이르며 최고 속도가 약 280km/h로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카였다. 1974년에 생산된 카운타크(Countach)는 최고 시속이 300km/h에 이르며, 지상 최고의 스포츠카라는 별칭을 얻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페루치오는 1972년에 회사를 매각하였다. 이후 여러 회사를 거친 끝에 1998년에 아우디에서 인수하였다. 아우디가 다시 폭스바겐에게 넘어감으로써 람보르기니는 현재 폭스바겐에게 생산되고 있다.
람보르기니의 심볼은 투우 문양인데, 이는 페루치오가 태어난 때의 별자리가 황소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페루치오 저택에는 람보르기니 차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대표적인 모델로는 마우라와 카운타크 이외에도 디아블로(Diablo), 무르치엘라고(Murcielago), 가야르도(Gallardo) 등이 있다.
Mercedes-Benz
1926년 다임러가 설립한 다임러와 1883년에 K. 벤츠가 설립한 벤츠가 합병하면서 출시한 브랜드이다. '메르세데스'는 다임러의 이사였던 에믹 옐리넥의 막내딸의 이름에서 따왔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자동차는 과거 수차례에 걸친 자동차 경주에서의 경험을 살린 진보적 설계와 정성들인 공작으로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다.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신앙에 가까울 정도의 신용을 얻었다.
걸윙 도어가 독특한 1954년형 스포츠카 300SL 걸윙을 비롯하여, 세계의 왕후귀족(王侯貴族)이나 대부호를 위한 대형 리무진 600, 고가의 대형세단 S 클래스 등이 대표적이다. 컴팩트카부터 스포츠카, 세단, SUV까지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으며, 2002년 최고급 럭셔리 세단 브랜드인 마이바흐를 출시하였다.
F700
NISSAN
1933년 요코하마에서 소형승용차 닷산(Datsun)과 차량부속품의 생산업체로서 출발한 일본의 자동차제조회사이다. 최근에는 우주항공과 산업기계 부문에도 진출하였다. 닷산은 1914년에 카이신(快進)사가 만든 일본 제1호 국산차 닷토(DAT)의 후신으로 1931년에 탄생하여 1958년 미국 땅을 처음 밟은 일본차이다. 닛산이 60년대에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크는 데 기여한 후 1982년에 은퇴하였다.
닛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공장 대부분을 연합군에게 점령당해 어려움에 빠졌으나 한국전쟁 중 군용트럭을 발주 받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1955년 공장을 돌려 받고 1959년 영국 오스틴사의 기술을 들여와 개발한 승용차 블루버드가 인기를 끌면서 일본자동차산업의 앞줄에 다시 섰다. 블루버드는 1962년 새나라자동차(주)에 의해 부품으로 들어와 한국에서 현대식 조립라인에서 생산된 첫 차가 되었다.
1966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일찍이 해외에 진출한 닛산은 1980년대 중반 엔고(¥高)와 관세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세계 각지에 직접 완성차공장을 짓는 확장형 경영을 펼치며 기술우위를 자부하였으나 판매 측면을 중시한 도요타에 실적에서 점점 뒤쳐졌다. 부채를 끌어다 쓴 닛산은 1990년대의 장기 불황 속에 연속되는 적자로 위기에 몰린 끝에 1999년 일본인의 자존심을 구기며 회사 지분의 37%가 프랑스의 르노사로 넘어가 ‘르노 얼라이언스’의 주축이 되었다. 그 뒤 신임회장 카를로스 곤(Carlos Ghosn)의 주도로 3년간 전체직원의 15%인 2만 2,900명을 감원하는 충격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기사회생에 성공하였다.
현재 일본, 미국, 멕시코, 영국, 스페인, 페루 등지에서 승용차 인피니티· 맥시마, 트럭 프런티어, 스포츠카 350Z 등을 생산하고 있다. 연간 300만 대 이상을 세계 각지에 팔고 있으며, 한국의 르노삼성자동차(주)에 승용차의 기본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는 잘 몰라서 사진만 올리고 글은 그다지 적지 않았습니다.
이번 모터쇼에서 가장 기대를 모았던 것이 이 곳 닛산부스 GTR을 다시 발매한다고 해서
가장 인기를 모았습니다.
또한 올해는 스포츠카, 레져용 자동차, 여러가지 기능형 자동차 들이 많이 선보였습니다.
레저용의 소형 트럭과 장애인을 생각한 기능형 자동차
내부를 살펴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닛산 부스로 몰려 왔습니다.
닛산은 부스를 2층으로 나누어서 한곳으로 많은 시선이 집중되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주말에는 2층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하는 군요
컨셉트카들의 기능을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기대를 모은 GTR이 등장합니다.
GTR을 반으로 잘라 버렸네요 ^-^
이쁩니다, 스카이라인~
검정색도 있습니다~
뒷 모습도 이쁘네요~
내부의 모습입니다. 도로에서 몰아 보고 싶어집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부스 걸들을 소개 하겠습니다 ^-^
등장!!
BMW
1916년 뮌헨에서 항공기 엔진회사로 설립되었다. BMW의 엠블렘은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회사답게 푸른 하늘에 항공기의 하얀 프로펠러가 도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1917년 현재의 이름이 되었고, 1928년 아이제나크 자동차 공장을 인수하고 다음해 첫번째 자동차인 Dixi를 생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항공기 엔진과 로켓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연합국에 의해 3년 동안 생산 금지 명령을 받았고, 1959년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700모델이 탄생하였다.
1962년 1500모델, 1966년 1600모델이 탄생하였고, 1973년 첫번째 자회사가 프랑스에 설립되었다. 1979년 디지털 엔진을 개발하고 수소 엔진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1990년 《암스 Ams》지에 의해 3, 5, 7 시리즈가 세계 최고의 차로 선정되었다. 1994년 로버그룹(Rover Group)을 합병하였고, 1996년에는 사륜구동차 랜드로버를, 1998년에는 뉴 M5와 M쿠페를 출시하였다. 2000년 랜드로버 사륜구동차 부문을 미국 포드자동차에 매각하였다.
본사는 독일 뮌헨에 있고, 전세계에 지사 및 현지법인을 두고 영업하고 있다. 한국에는 1995년 진출하여 현지법인을 만들었고 2000년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하였다.
헐.. 컨셉트카들은 정말 이쁜것 같습니다.
차보다 더 가지고 싶었던 자전거 였습니다.
BMW MINI COOPER
BMW도 이쁘지만 미니쿠퍼는 더 이쁜것 같네요 영화 이탈리안 잡에 나오던 자동차들 정말 이쁘고 빠르던데 ^-^
쉬어가라고 의자를 만들어 두었군요 푹신푹신해서 잠시 앉아서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 봅니다~
게임도 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네요 ^-^
SAAB
CHRYSLER
Chrysler
1909년 조너선 맥스웰(Jonathan Maxwell)과 벤저민 브리스코(Benjamin Briscoe)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모터 컴퍼니(United States Motor Company)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하였다. 이 회사는 1913년 문을 닫고, 맥스웰 혼자 맥스웰컴퍼니(Maxwell Company)라는 이름으로 다시 운영하던 중 1920년 제너럴모터스(GM)의 초대 부사장이었던 월터 P. 크라이슬러(Walter P. Chrysler)가 이 회사에 들어왔다.
1922년 차머스모터카(Chalmers Motor Car)를 인수하였고, 1924년 크라이슬러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크라이슬러70'을 생산하였다. 이듬해 회사이름을 '크라이슬러'로 바꾸었으며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28년 닷지브라더스(Dodge Brothers)를 인수하면서 제너럴모터스와 포드자동차 다음가는 미국 3대 자동차회사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1950년대에는 크고 작은 자동차회사들을 흡수하였고, 1963년 프랑스의 심카(Simca), 1967년 영국의 루터스모터스(Rootes Motors), 에스파냐의 바레이로스 디에젤(Barreiros Diesel)을 매수하여 각각 크라이슬러-프랑스, 크라이슬러-유나이티드킹덤, 크라이슬러-에스파냐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해외전략의 실패로 1979년 모두 프랑스의 푸조에 매각하였다. 그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도산위기에 처하였으나, 리 A. 아이아코카(Lee A. Iacocca)의 지도로 1983년말 재건되었다. 1998년 독일의 자동차회사인 다임러벤츠와 합병하여 다임러크라이슬러로 공식 출범하였다. 그러나 경영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다임러크라이슬러는 2007년 5월에 크라이슬러를 미국 사모 펀드 서버러스 캐피털 매니지먼트에 매각하였다.
FERRARI
Ferrari
페라리(Ferrari)는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본사를 둔 스포츠 자동차 제조회사로 1939년 엔초 페라리(Enzo Ferrari)가 설립했다. 엔초 페라리는 1929년 자신의 이름을 딴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자동차 경주팀을 창단했는데, 이 팀은 본인을 비롯한 자동차 경주 선수들의 스폰서 역할을 해왔다. 자동차 경주에는 알파 로메오의 자동차가 사용되었으나 엔초 페라리는 경주용 자동차를 자신이 직접 생산하기 위해 1939년 페라리의 기원인 Auto Avio Costruzioni Ferrari를 모데나에서 설립한다. 페라리는 설립 시부터 계속 자동차 경주에 참가해 뛰어난 성적을 보여왔다. 특히 1950년대, 1960년대,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포뮬라 원을 석권해 오면서, 포뮬라 원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제작팀으로 기록되고 있다.
페라리는 1960년대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결국 피아트에 인수되었다.
MASERATI
Maserati
1920년대 중엽에 마세라티가(家)의 3남 알피에리가 손으로 만든 경주용 모델을 제작하여 경주에 성공하였다. 1926년 알피에리 마세라티사(社)가 설립되었고 그 해 타르가프로리오에서는 1.5 리터급(級)에서 우승하여 주목을 끌었다. 1938년에는 북이탈리아의 오르시사(社)에 흡수되었으나 경주 활동은 계속되어 1950년대에는 F1 레이스와 메이커 선수권대회에서 빛나는 성적을 남겼다. 현재는 프랑스의 시트로엥사(社)의 산하에 들어가 특이한 고성능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 메이커로서 알려져 있다.
Lotus
Lotus
1952년 영국 노퍽주에서 콜린 채프만(Colin Chapman)이 설립하고, 로터스 최초의 모델인 마크 4를 생산하였다. 1956년에는 런던 모터쇼에 마크 8을 출품하였다. 1973년까지는 자동차 부품을 조립할 수 있도록 패키지로 판매하였고, 1980년대 중반까지 각종 자동차 경주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하며 큰 활약을 하였다. 로터스는 자동차 경주에서 모두 79차례나 우승을 거머쥐었다. 1982년에 콜린 채프만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사(社), 부가티 아우토모빌리사(社)를 거쳐 말레이시아의 프로톤사( 社)에서 인수하였다.
주로 스포츠카와 레이싱카를 생산하며 2005년 현재, 로터스 자동차와 로터스 엔지니어링으로 나누어 운영되고 있다. 로터스의 대표적인 모델에는 엘란, 엘리제, 에스프리 등이 있다.
JAGUAR
Honda
정식명칭은 혼다기연공업이다. 1946년 내연기관과 차량의 연구·제작을 목적으로 창업한 혼다기술연구소[本田技術硏究所]가 그 전신이다. 창업 당시 자전거에 옛 군대의 소형엔진을 부착하여 만든 모터사이클(오토바이)로 큰 호응을 얻었다.
1948년에 현재의 사명으로 개칭하고, 모터사이클 제작을 시작 최초의 혼다 모터 A형을 판매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어 1951년에는 드림호(號) E형, 1953년에는 벤리호와 기타 신제품을 계속해서 개발, 발표하였다. 1961년 영국 만섬[島]에서 열린 TT레이스에서 3부문(125·250·350cc)을 재패함으로써 혼다 모터사이클의 국제적 평가를 확립하였다. 또 1963년에는 스포츠카 S 360을 발표하여 4륜차 부문에의 진출을 기도하였다. 1968년 2륜차의 생산이 연 1,000만 대를 돌파하였고, 4륜차 부문에서는 1969년 혼다 1300의 발매에 의해 본격적으로 승용차 부문에 진출하였으며, 1972년에는 배출가스면에서 우수한 CVCC엔진 개발에 성공하였다. 판매·생산을 위한 현지법인이 세계 각지에 10개사, 그 밖에 기술제휴에 의한 현지 생산회사가 30개사 있다. 매출구성은 2륜차 22%, 4륜차 62%, 기타 16%이다.
Rolls-Royce
Rolls-Royce
영국의 고급자동차 및 항공기 엔진 제조회사.
국가 영국
업종 자동차 및 항공기 엔진 제조
설립자 F. H. 로이스, C. S. 롤스
설립일 1906년
1906년 맨체스터에서 수공(手工)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있던 전기기사 F.H.로이스와 런던의 귀족 출신 자동차 레이서인 C.S.롤스의 사업 합병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견고하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차 안에서는 시계소리만 들리고 찻잔 위의 커피잔이 흔들리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어 이름을 떨쳤다. 이처럼 부드럽고 안락감이 뛰어나 '달리는 별장'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엠블럼인 RR는 두 사람 성의 첫자를 딴 것이다.
1915년 항공기 엔진의 생산을 개시하고 고급승용차를 제조하는 한편,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로서도 발전하였다. 1949년 제트 엔진을 개발하였고, 1966년 영국의 브리스틀시드레를 매수하여 세계 제2위의 항공기 엔진회사로 성장하였으나, SST(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용(用) 엔진 개발비 등이 예상 외로 증대함으로써 경영난에 빠져 1971년 도산하였다.
영국정부는 국방 및 국제협력의 필요로 항공엔진 부문, 선박용·공업용 가스터빈 부문을 인수하여 정부기업 롤스로이스를 설립하게 되었고, 자동차 부문은 새 회사 롤스로이스모터스가 경영을 맡게 되었지만, 1980년 롤스로이스모터스도 비커스(Vickers Ltd.)에 흡수합병되었다. 1987년 영국정부는 롤스로이스의 주식을 민간에 매각하여 민영화하였다.
창업자 롤스는 1910년 비행대회에 출전 중 도버해협에서 추락사하였고, 로이스는 귀족 작위를 받고 70세에 사망하였다.
VOLVO
Volvo
안전한 자동차를 생산하기로 유명한 스웨덴의 자동차 제조업체.
국가 스웨덴
업종 자동차 제조업
설립자 A.가브리엘손, G.라르손
설립일 1926년
본사 스톡홀름
한국지사 볼보자동차코리아
총자산 228억 9700만 달러(1999)
매출액 151억 2100만 달러(1999)
1926년 SKF의 직원이던 아사르 가브리엘손(Assar Gabrielsson)과 구스타프 라르손(Gustaf Larson)이 설립하였다. 원래 'Volvo'는 베어링·특수강 제조업체인 SKF에서 생산하던 볼 베어링의 이름으로 "나는 구른다(I roll)"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27년부터 자동차 생산에 들어갔다. 1935년 독립하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변속기·차체·건설장비·항공기용 엔진 등의 제조업체를 흡수하거나 또는 이들 제조업체에 투자하는 등 사세를 확장하였다.
1970년대에 와서는 해외진출을 꾀하고 남아메리카·동남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자동차조립공장을 건설하였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영악화도 생산의 자동화 ·합리화 경영으로 극복하였고, 1979년에는 프랑스의 르노의 출자를 획득하여 승용차 부문을 독립시켰다.
1980년 이후 경영다각화를 시작하였으며, 자회사를 통합하여 지주회사가 되었으나 1999년 포드자동차에 인수되었다. 한국에는 1990년에 진출하여 볼보자동차코리아를 통해 서비스 및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PORSCHE
Porsche
국가 독일
업종 자동차제작
설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쉐
설립일 1931년
본사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
오스트리아의 자동차공학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가 1931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슈투트가르트에 스포츠카와 경주용자동차를 제작하는 포르쉐 엔지니어링 오피스(Porsche Engineering Office)로 설립하였다. 포르쉐라는 회사이름은 1950년에 붙였다.
히틀러의 ‘국민차’계획에 깊이 관여하면서 1934년 폭스바겐을 최초로 설계하고 1936년 10월 폭스바겐의 딱정벌레형 원형을 만들었다. 1939년 페라리, 람보르기니(Lamborghini), 부가티(Bugatti)와 함께 세계 4대 스포츠카의 하나인 포르쉐를 처음으로 제작하였다.
1948년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Ferry Porsche) 주도로 포르쉐 최초의 시리즈인 356을 선보였다. 이어 보급형모델인 914·924, 벤츠·재규어 등 최고급품들과 겨룰 만한 최고급형 모델 928, 포르쉐 모델 가운데 가장 저렴한 944, 944의 대체차종인 968 등 우수한 스포츠카를 제작하였다.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포르쉐 356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1951년 세상을 떠났으나 페리 포르쉐가 탁월한 경험과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1950년대 말 회사를 연산 8,000대 수준의 규모로 성장시켰다. 본사는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PEUGEOT
Peugeot
국가 프랑스
업종 자동차 제조업
설립자 아르망 푸조
설립일 1885년
본사 파리
총자산 558억 2000만 유로(2001)
매출액 502억 8800만 유로(2001)
푸조그룹의 지주회사로서 유럽에 5~6개의 금융회사도 보유하고 있다. 1885년 페달자동차를 제작하기 위해 설립한 가족 소유의 공장이 모체이다. 1890년 공장은 푸조가(家)의 실업가 아르망 푸조에 의해 그의 이름을 딴 공장으로 재정비되었다. 1891년에는 독일 다임러의 특허에 의한 가솔린 엔진으로 전환하였다.
1894년 개최된 사상 최초의 모터스포츠 이벤트 파리루앙 트라이얼에서는 자사 제품을 출품하여 프랑스의 파나르 르바소르와 함께 1등에 입상하고 1896년 상호를 푸조자동차회사로 변경하고 법인화하였다. 그후 1919년경까지 그랑프리 레이스에서 활약,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레이스에서도 1913년, 1916년, 1919년 3회에 걸쳐 우승하였다.
1974년 석유파동으로 경영난에 처한 같은 업종의 시트로엥에 자금을 지원하고 1976년에 합병, 두 회사를 통할할 지주회사 '푸조-시트로엥'을 설립하였다. 1978년 미국의 크라이슬러(1999년 현재의 다임러크라이슬러)로부터 크라이슬러-프랑스와 영국·에스파냐에 있는 자회사를 매수, 탈보(Talbot)로 하고 1979년 푸조-시트로엥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본사는 파리에 있다.
MITSUBISHI
Mitsubishi Motors
1917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해온 일본 미쓰비시그룹의 자동차제조회사.
국가 일본
업종 자동차 및 부품 제조
설립일 1917년
본사 도쿄
총자산 271억 45백만 달러(1999)
매출액 299억 51백만 달러(1999)
연원을 따지면 1870년 해운회사 쓰쿠모(九十九)상회에 이른다. 쓰쿠모는 훗날 미쓰비시중공업이 된다. 미쓰비시자동차는 1917년부터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업부로 자동차를 만들어오다 1970년에 독립하였다. 트럭과 버스부문이 분사된 2003년 이후에는 승용차에 전업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전투기 ‘제로센(零戰)’과 전함 ‘야마토(大和)’를 만든 회사이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쓰비시자동차는 1946년에 전쟁 전에 만들던 후소(Fuso) 버스의 생산을 재개하고 3륜트럭을 개발한 데 이어 1950년 미국의 카이저-프레이저의 소형차, 1953년 윌리스의 지프를 조립생산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 직접 디자인한 4륜소형승용차를 시작으로 미쓰비시는 10년간 미니카에서 고급승용차, 버스, 중형트럭까지 차종을 다양화하고 1970년 독립하였다. 이듬해에는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35% 지분을 인수하였다.
미쓰비시의 승용차 중에서는 실용적인 콜트(Colt), 대형의 데보네어(Debonair), 젊은이 취향의 이클립스(Eclipse) 등이 유명하다. 미쓰비시는 다양한 SUV 차량과 경차를 통해 90년대초 불황기를 비교적 수월하게 견디며 한때 일본 내 3위인 혼다자동차를 제치기도 하였다. 또한 미쓰비시는 모터 스포츠에서 강점을 나타내 1983년 파리-다카르 랠리 우승, 1996년부터 WRC 드라이버 부문 4년 연속 우승 등 많은 랠리에서 엔진의 우수성을 보였다. 랜서 에볼루션(Lancer Evolution)이 대표적인 스포츠카이다.
1973년 엔진기술공여를 시작으로, 미쓰비시는 현대자동차와 제휴하여 포니, 갤로퍼 등의 제작을 지원하고, 데보네어(한국에서는 그랜저)와 프라우디아(한국에서는 에쿠스)를 공동개발하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이후 미쓰비시는 미국현지공장 성희롱, 리콜 정보의 조직적 은폐, 차체결함에 의한 트럭 타이어 이탈 등의 사건사고로 이미지가 추락하고 이에 미국 내 자동차할부금융채권의 부실화가 더해지면서 위기에 봉착하였다.
Volkswagenwerk
Volkswagenwerk
딱정벌레형 자동차로 유명한 독일의 자동차회사.
국가 독일
업종 자동차 제조업
설립일 1937년
본사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
총자산 1044억 2400만 유로(2001)
매출액 885억 4000만 유로(2001)
1937년 5월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설립된 독일국민차 준비회사가 전신이며, 1938년 9월 폭스바겐 유한회사로 개칭하였다. 폭스바겐은 독일어로 '국민차'란 의미이며 딱정벌레형 폭스바겐의 원형은 명설계자 페르디난트 포르셰(Ferdinand Porsche)가 만들어냈다. 그는 이미 1936년 10월에 딱정벌레형 폭스바겐의 원형을 발표하였다.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의 대공장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었으나 1945년 생산을 재개하였고, 미국에 상륙한 폭스바겐은 초기의 부진을 씻고 1959년 획기적인 대대적 광고로 판매에 호조를 기록하였다. 1960년 주식을 공개, 민영화하고, 1969년에는 아우디NSU아우토우니온을 산하에 두었다.
딱정벌레형은 기본적인 모델을 바꾸지 않은 채 1978년 1월 서독 본국에서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1927만 대나 생산되었고, 그 후속으로는 각종 후보차가 있었으나 결국 1974년 봄에 발표된 래빗으로 결정되었다. 폭스바겐은 전세계에 자회사를 두고 있으며 이들 공장에서는 승용차·미니버스·봉고 등 차량과 자동차부품도 생산하고 있다.
1990년 체코의 자동차회사인 슈코다(Škoda)를 인수하여 유럽 최대의 메이커가 되었다. 연간 평균 생산대수는 약 520만 대(독일 180만 대, 기타지역 340만 대)이고 고용규모는 총 30만 명(독일 15만 명, 기타지역 15만 명)이다. 본사는 볼프스부르크에 있다.
MAZDA
Mazda
1920년에 설립되어 3륜 트럭 등을 만들다가 승용차메이커로 발전한 일본의 자동차제조회사.
원어명 マツダ
국가 일본
업종 자동차 및 부품
설립일 1920년
본사 히로시마
총자산 143억 28백만 달러(1999)
매출액 194억 13백만 달러(1999)
1920년 동양코르크공업(주)로 설립되어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소형 오토바이를 만들던 회사이다. 1927년 동양공업(주)로 개명하고 1931년부터 3륜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트럭시장을 석권하였으며, 1960년 R360 쿠페를 발표하면서 승용차시장에 진출하였다. 이어서 1962년에 캐롤, 1964년에 파밀리아를 내놓고, 1967년에는 독일의 NSU 및 방켈(Wankel)과의 기술제휴를 바탕으로 최초의 로터리엔진차 코스모 스포츠 쿠페를 선보였다. 캐롤과 파밀리아 시리즈의 호조 속에 대미수출대수가 1973년에 연간 12만 대에 이르렀다.
동양공업은 1973년 가을의 오일쇼크 이후 곤경에 빠지면서 스미토모은행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연비가 떨어지는 방켈 로터리엔진 탑재 차량들의 판매가 줄어든 탓이었다. 1978년에 발매한 RX-7이 인기를 얻고, 이듬해 포드가 25%의 주식을 인수하면서 곤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미 1969년부터 자동변속기 개발과 부품키트 공급 등에서 제휴하고 있던 포드가 자본참여하면서 양사의 협력관계가 깊어졌다. 1982~1987년 멕시코의 에르모시요(Hermosillo)에 5억 달러를 들여 포드의 압형 및 조립 공장을 설립하는 공동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마쓰다는 디자인, 시설과 장비, 품질관리시스템, 종업원훈련 등의 기술을 포드에 이전하였다. 1984년 봄에 사명을 바꾼 마쓰다는 이후 포드와 공조하면서 해외시장 진출에 도움을 얻었다.
1990년대 들어 엔고와 장기불황으로 수출과 내수판매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1996년에 누적적자가 750억 엔에 이르자 마쓰다는 추가지분과 경영권을 포드에 넘겼다. 한편, 마쓰다는 기아자동차가 1962년 3륜 용달차 K-360, 1973년 승용차 브리사 등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한국의 자동차 국산화에 기여하였다.
DAIHATSU
Daihatsu
1907년에 '하쓰도키(發動機)제조'라는 회사명으로 창립하여 1930년 3륜자동차 'HA'를 발매하며 자동차제조를 시작한 일본 회사이다. 1951년에 '다이하쓰공업'으로 개명하였으며 본사는 오사카에 있다. 컴팩트한 자동차 만들기를 표방하며 660cc 미만의 경자동차를 비롯하여 소형자동차와 저공해 CNG(Compressed Natural Gas:압축천연가스)차 등을 만든다.
1998년에 누적생산 2,000만 대를 넘어선 다이하쓰는 연간 내수 60만 대, 수출 10만 대 등 합계 약 80만 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1965년에 이미 전기자동차(electric vehicle)의 연구에 착수하여 1969년 첫 EV모델을 발매한 다이하쓰는 2000년에 전기자동차 판매 누계 8,000 대를 기록했다. 1984년 중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등지에 진출했다. 한국과는 1990년 아시아자동차와 기술협력계약을 맺은 바 있다.
다이하쓰의 경자동차로 미라(Mira)와 코펜(Copen)이 유명하다. 미라 시리즈는 1980년에 판매를 시작하여 2000년까지 누적 판매 400만 대를 기록했다. 코펜은 2002년에 발표된 660cc 경자동차로 하드탑 지붕을 20초 안에 전동으로 개폐할 수 있는 앙증맞은 2인승 컨버터블이다. 64마력의 힘으로 1ℓ로 18km를 간다. 1967년부터 업무제휴관계에 있던 도요타가 1998년 공개매수에 의해 주식의 과반을 취득하면서 도요타의 자회사에 편입되었다.